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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지 않은 나눗셈

(10/10/2019)


“덧셈은 욕심. 뺄셈은 낭비. 곱셈은 과욕. 나눗셈은 사랑.

초등학생에게 맨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덧셈이 아니라 나눗셈이다.

나눗셈은 어려워서 어려운 것이 아니라, 많이 해보지 않아서 어려운 것이다.”

얼마 전 어느 카피 라이터 출신 작가의 책에서 읽은 짧은 글입니다.

‘해보지 않아서 어려운 것’이라는 말에 며칠 전 아들 녀석의 ‘수학 시험지 사건’이 기억 속에 겹쳐 떠오릅니다.

“아빠, 나 오늘 100점 받았어!”

스쿨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들 녀석이 자랑입니다. 무조건 칭찬해줘야겠다는 생각에 무슨 과목에서 100점을 받았는지 묻지도 않고, “우와! 정말? 우리 아들 대단한걸? 잘 했어!” 감탄사를 쏟아부어 주었습니다.

거실에 놓인 하얀 책상 앞에 앉아서 가방을 열고, 폴더를 꺼냈습니다. 일주일동안 본 시험지들이 수북이 나옵니다. 열 서너장 정도되는 시험지들 중에서 100점짜리는 딱 두 장! 나머지는 70점대에서 90점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습니다. 역시… 잘 한 것만 드러내고 싶어하는 건 인간의 본능인가 봅니다. 피식 웃음이 났습니다.

그 중 100점짜리 시험지 두 장이 다시금 눈에 들어옵니다. 재밌는 건 두 장 모두 4칙 연산 중 덧셈에 대한 시험지였습니다.

   13               7

+   4            + 8

----          ----

   17              15

이런 식의 문제들이죠.

‘녀석, 가르친 보람이 있군!’ 아들을 대견스러워 하기보단 스스로를 공치사하듯이  중얼거렸습니다. 참, 유치한 아빠입니다. 실은, 2학년이 되니 슬슬 4칙 연산을 시작하길래 수학을 조금씩 봐줘 왔던 터였습니다.

‘난 수학은 영 젬병이었는데, 녀석… 아빠 닮지는 않을 것 같네…’라고 생각하며 다른 시험지들을 들춰보는데, 다른 종류의 수학 시험지들도 눈에 들어오는 것입니다. 당연히 100점과는 거리가 먼 성적의 시험지들입니다. 이런 문제들입니다.

‘철수는 동물원에서 어른 공작새 2마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기 공작새들도 보았습니다. 철수는 오늘 모두 7마리의 공작새를 보았습니다. 그러면, 철수가 본 아기 공작새는 모두 몇 마리일까요?’

아들 녀석의 답안지에는 9라는 숫자가 아주 자랑스러운 듯이 크게 써져 있습니다. 2와 7을 무작정 더했나 봅니다. 스스로의 공치사에 하늘이 찬물을 끼얹는 듯한(?) 순간입니다. 수학강사 신선생의 체면이 구겨지는 순간입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상황과 연관해서 질문한 덧셈 문제들을 아이는 잘 이해를 못한 것입니다.

수학의 문제가 아니라 영어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기계적인 도식으로만 덧셈을 연습해 오다가 실제 상황에서 그 공식을 적용해 볼 생각을 못한 건 아닐까요? 혹은, 그런 식으로는 덧셈을 해 보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그 날 저녁 식탁에서 신 선생은 바로 실전 대비반 강의에 들어갔습니다. 다가오는 주말 시험 대비 실전 연습입니다.

“민결아, 민결이는 몇 살 더 먹으면 열 살이 되지?”

“두 살이요.”

“그럼, 민결이가 열 살이 되면, 민하는 몇 살이 될까?”

“음…”

천정을 향해 눈을 치켜뜨고 열심히 손가락을 꼼지락거더니...

“일곱 살!”

“맞았다! 잘 했어. 역시 우리 아들 똑똑해. 밥 먹자!”

덧셈을 이런 식으로 해 보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결론을 내리고는, 신 선생은 고슴도치 아빠의 얼굴을 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나눗셈을 먼저 가르치라’는 위의 카피 라이터의 말은 공감하기 어려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말의 고갱이는 ‘사랑과 나눔의 삶은 해보지 않아서 어려운 것일 뿐이다’라는 뜻일 것입니다.

나눠주는 것, 사랑하는 것… 공식으로만 줄줄 외웠지 실제로 많이 해보지 않고 있는 것들이 아닐까요? 손해볼 줄로만 알고, 힘들 줄로만 알고, 시도해 보지 않아서 어려운 게 아닐까요?

같은 맥락에서, 타계한 기독교 철학자 달라스 윌라드는 기념비적인 그의 저서, ‘하나님의 모략(Divine Conspiracy)’이라는 책의 서두에서 기독교가 상아탑 속의 윤리로 전락해버린 현재의 모습에 대해서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도 목사로서, 주입식 교육처럼 성경의 내용을 판서(板書)하듯 가르치지만, 정작 실생활로는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당혹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응용 수학에 빵점 받는 목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오늘은 저만의 나눗셈을 실전 문제로 풀어봐야겠습니다.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 담임 972-488-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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