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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단상] 모세의 떠남(1)

May.24.2019




모세는 ‘이스라엘 건국의 시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물입니다. 히브리인의 민족적 기원을 아브라함에게서 찾는다면 국가로서의 기원은 모세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집트의 왕자로 성장한 후, 당시 억압받고 있던 자신의 민족의 독립을 위해 그들을 이끌고 약속의 땅, 가나안(지금의 팔레스타인 지역)에 정착시킨 독립투사이자 임시정부의 수장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히브리 민족의 신이었던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건국의 초석이 되는 헌법(건국 이념에 해당하는 십계명과 실증법에 해당하는 제의법 및 각종 민사법)을 제정했으며, 인구센서스를 실시해서 다음 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준비해주기도 했습니다. 이 모세의 인생에는 세 개의 랜드마크가 있었으니, 바로 ‘떠남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1)모태를 떠나야 했고, 자신이 자라온 (2)왕궁을 떠나야 했으며, 도피처이자 안식처 역할을 했던 (3)미디안 광야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 세 번의 떠남을 통해서 모세는 변화와 성장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져 갔습니다. 이번에는 이 모세의 떠남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모태(母胎)를 떠남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보면 이민족에 의해 이집트인들이 통치 받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대략 기원전 1800년경, 이집트 북동쪽에 있던 기마전에 능한 힉소스족에 의해 점령당한 것입니다. 이후 300여년 간, 힉소스족이 파라오에 즉위했었습니다. 히브리인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직까지 등극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민족 정책에 있어서 관대했던 힉소스왕조의 통치 때문이었다고 많은 학자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요셉의 도움으로 가뭄을 피해 이집트로 내려갔던 야곱의 후손들은 이 힉소스왕조시대 동안 번성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금 이집트인에 의해 왕조가 복원되자 히브리인들의 엄청난 번식력에 위기감을 느낀 왕실은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게 됩니다. 이 정책이 실패하게 되자 파라오는 ‘인종청소’라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어 들기에 이릅니다. 즉, 태어나는 모든 남자 아기들을 나일강에 버리라는 령이 떨어집니다. 모세의 이름은 “물에서 건져냄을 받았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노아가 방주를 통해서 대홍수 가운데서 거져냄을 받은 것처럼, 모세는 미니 방주와도 같은 갈대 상자에 실려 ‘히브리인 인종청소’라는 죽음의 홍수 가운데서 건져냄을 받았습니다. 그는 태생부터가 하나님의 구원을 상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는 날 때부터 이별 즉, 떠남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이집트의 젖줄’이라고 하는 나일강 위를 떠다닌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젖 한번 물어보지 못한 채 그 품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 절체절명의 위기는 모세를 오히려 가장 안전하고 풍요로운 곳으로 인도해주었습니다. 나일강은 그 작은 갈대 상자를 파라오의 공주 시녀들과 함께 노니는 나일강의 한 지류로 이끌어 간 것입니다. 공주의 눈에 띄어 그 자리에서 양자로 입적된 모세는 고대 근동 지방 최고의 학문과 문화 등을 습득하면서 왕실의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사랑과 보호의 상징과도 같은 엄마의 품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먼저 속하는 생존을 위한 보금자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 모태에서부터 떨어져야만 살 수 있었던 모세의 떠남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유발 하라리가 “호모 사피엔스”에서 주장한 것처럼, 떠나는 것이 정주하는 것보다 사람을 더 강하게 하기도 합니다. 하라리의 통찰력 있는 주장에 따르면, 농업혁명 이전의 인류는 수렵채취에 의존했기 때문에 늘 식량을 찾아서 즉, 생존을 위해서 떠나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떠남에 익숙해져 있었고, 새로운 환경이나 악조건에 대한 적응력이나 생존력이 농업혁명시대 인간의 그것보다 탁월했다고 그는 주장합니다. 농업민들은 가뭄이 들면 하늘만 쳐다볼 뿐이었지만, 수렵채취인들은 다른 터전을 찾아 떠남으로써 가뭄의 문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농업민들은 주로 제한된 식량자원(쌀, 감자 등)에 의존한 채 살았지만, 수렵채취인들은 벌레에서부터 크고 작은 짐승들, 그리고 각종 열매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먹잇감들을 식량자원으로 삼음으로써 훨씬 더 강인한 생존력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은 삶을 위해 삶의 보금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떠남을 통해서 더 강해지는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지금 내가 편안하게 생각하고 있는 안전지대가 사실은 나를 더 소극적이고 수동적으로 만들어 결국엔 퇴보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반대로, 강물에 던져지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 어쩌면 나를 연단하여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상황이, 혹은 어떤 일들이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떠밀려가듯 흘러가고 있다고 느껴질 때면 모세의 갈대상자를 기억하십시요. 예상치 못한 감사한 일들이 여러분 앞에 펼쳐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로교회

신자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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