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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단상] 모세의 떠남(2) 왕궁의 떠남

Jun.21.19


‘이스라엘 건국의 시조’라고 불릴 수 있는 모세의 인생에는 세 개의 랜드마크가 있었으니, 바로 ‘떠남의 순간’들이었습니다. 그는 태어나자마자 (1)모태를 떠나야 했고, 자신이 자라온 (2)왕궁을 떠나야 했으며, 도피처이자 안식처 역할을 했던 (3)미디안 광야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두 번째로 왕궁을 떠난 모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왕궁으로 들어간 모세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발흥한 힉소스인들은 BC 17세기부터 300년간 이집트를 점령했고, 이들에 의해 쫓겨난 이집트인들은 남쪽으로 내려가 겨우 세력을 유지하는 정도였습니다. 이민족이 다스리던 시기였기에 요셉과 같은 히브리인이 총리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힉소스왕조는 300년간 이어지다가, 남쪽으로 밀려난 이집트인들의 파라오였던 아모세(Ahmose) 1세에 의해 무너졌습니다. 아모세 1세를 비롯한 이집트의 제18왕조는 이방인이었던 힉소스왕조를 무너뜨리면서 힉소스족과 같은 셈족 계열이었던 히브리인들을 혹독하게 억압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거운 강제노동에 이어 결국에는 신생아들을 죽이는 히브리 민족 말살 정책까지 자행하게 됩니다. 투트모세 1세에게는 “하쳅수트”(Hatshepsut)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후에 이집트의 여자 파라오가 되어 외교, 문화, 건축 등 모든 면에서 강력한 정치를 펼쳤습니다. 제위 기간 동안의 왕성한 통치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 그녀의 성품과 그녀에게 아들이 없었다는 개인적인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아버지 파라오의 명령을 어기고서 히브리인 사내아이(모세)를 강에서 건져내어 양자로 삼은 파라오의 공주는 바로, 하쳅수트입니다. 역사가들에 의하면, 고대 이집트 왕궁에서는 여성 즉, 왕의 모친이나 공주의 영향력이 실질적이었다고 합니다.실제로 왕위를 이을 왕자를 출산하는 것은 여자들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정치문화 가운데서 아들이 없었던 하쳅수트는 모세에게 왕위를 이어주기 위해서 많은 공을 들였을 것입니다. 문예, 정치, 역사 등 기초 학문을 비롯해서 왕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이집트의 모든 것을 가르쳤을 것입니다. 모세는 생김새만 셈족이었지 말투나 사상 모든 것이 이집트 문화에 둘러싸여 성장했을 것입니다.


갈림길에 선 모세의 선택 그런데, 이처럼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선택받은 자, 모세로 하여금 이집트를 다스릴 자신의 장래를 버리고 왕궁을 떠나도록 만든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우발적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된 것입니다. 노역 현장에서 히브리인 노역자를 핍박하던 이집트 관리자를 때려죽이고는, 그 이튿날 사건의 목격자가 나타나고 수배령이 내리자 도주합니다(출애굽기 2:11-15). 이 사건의 기록을 보면, 모세가 자신의 동족에 대한 인식을 분명하게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 왕궁에서 이집트 교육을 받으며 이집트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 여기고 다스리도록 교육을 받았을 텐데, 무엇이 모세로 하여금 히브리인에 대한 동족애를 떨쳐버리지 못하도록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의 어머니 요게벳과 미리암의 영향이었습니다. 모세의 갈대상자를 따라온 미리암의 소개를 받아 하쳅수트는 아기 모세를 그의 생모(生母) 요게벳의 품에 맡겨 젖을 뗄 때까지 키우도록 합니다(출애굽기 2:7-9). 이리하여, 모세는 아기 때부터 히브리인과 인연을 맺게 되고, 유모가 된 그의 어머니 요게벳은 이후로도 지속적으로 모세에게 간접적으로 히브리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요게벳은 아마도 이 전통의 가르침을 따라 어린 모세를 가슴에 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에게 젖을 먹이면서, 걸음마를 가르쳐주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가 히브리인임을 가르쳤을 개연성이 충분합니다. 어쩌면 요게벳은 밤마다 히브리인 전통 자장가를 불러주면서 어린 모세를 재웠을지도 모릅니다. 모세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이라는 두 세계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이집트 문화에 둘러싸여 양육을 받았지만, 그의 영혼의 한구석에는 유대인의 정신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성경 말씀을 부지런히 읽어줄 것을 부모들에게 명령하고 있습니다(신명기 6:6-7). 요게벳이 성실하게 이 신앙 전통에 순종했을 때, 모세의 마음속에 정체성의 뿌리가 심겨져 결국에는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모세의 두 번째 떠남은 모세가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며 성장했음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준비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로교회

신자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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