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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단상] 세상의 빛

2.1.2019



새벽 3시 30분. 저는 지금 잠에서 깨어 거실에 나와 있습니다. 벽난로에 불을 지피고는 부엌으로 가서 커피를 마실 물을 끓입니다. 곧 배가 출출해 질 것 같아 스낵용 비스킷 한 팩도 테이블 위에 올려놓습니다. 담요 한 장을 무릎 위에 두르고는 랩탑 컴퓨터를 켜고는 글을 씁니다. 그러고 보니, 이 글을 쓰는 지금 공교롭게도 저의 수면 패턴은 17세기 여염집 사람들과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2001년, 역사 작가 로저 에커치(Roger Ekirch)는 ‘밤의 문화사’(At Day’s Close: Night in Times Past)라는 아주 흥미롭고도 설득력 있는 연구를 출판했습니다. 에커치의 연구에 의하면, 산업혁명 이전 즉, 인공의 불빛이 없던 시절에는 해가 지고 나면 온 세상은 말 그대로 ‘암흑’이었습니다. 특히, 겨울철에는 다음날 동이 틀 때까지 14~15시간 동안의 칠흙 같은 암흑이 시작되는 것이죠. 그 시절 사람들은 하루의 절반 이상이나 되는 밤을 어떻게 보냈을까요? 그들은 두번에 걸쳐서 잠을 나누어 잤다고 합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후, 일몰과 함께 곧장 ‘첫번째 잠’자리에 듭니다. 4시간가량 잔 후,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서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모닥불 근처로 모여들어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랑을 나누거나 혹은 못 다한 집안일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또다시 4시간에 걸친 ‘두번째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 시절 사람들의 수면 패턴에 의하면, 저는 지금 첫번째 잠에서 깨어 두번째 잠을 자기 전까지 휴식과 여유를 즐기고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원시적부터 내려오던 인간의 수면 패턴과 밤의 문화는 산업혁명과 함께 엄청난 지각변동을 겪게 됩니다. 인공의 불빛이 본격적으로 어둠을 걷어내기 시작한 것입니다. 18세기 이전에는 소기름으로 만든 양초(tallow candle)가 조명기구의 전부였습니다. 오늘날의 양초와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어둡고, 불빛도 탁하며 그을음을 잔뜩 만들어내는 우지(牛脂) 양초로 간신히 어둠을 밝혔습니다. 그러다가 1712년 고래기름이 발견되어 양초의 재료로 개발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빛의 시대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산업혁명과 더불어 화석 에너지의 개발로 인해 케로신 램프를 거쳐 전기 에너지를 이용한 전구가 등장하는 동안 인류는 점점 밤을 몰아내고 낮의 활동을 연장시켜 왔습니다. 밤에도 불이 켜진 채 돌아가는 공장이며, 일몰 이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지는 활동은 “이중 수면” 패턴과 그 사이에 놓인 밤의 유희 문화에 영구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지요.

이처럼, 조명의 발전과 명맥을 함께 하며 인류는 오늘까지 조금씩 다른 삶의 양태를 영위해 왔습니다. 오늘날의 밤하늘이 150여년 전의 밤하늘보다 6천배가량 밝다는 사실을 알고 계시나요? 지금 이 시간, 달라스의 밤 풍경을 하늘 위에서 본다면 마치 허블 망원경 안에 뿌려진 은하수를 보는 듯 환하게 보일 것입니다. 지금 이 새벽에도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무인 생산라인들이 있습니다. 24시간 대낮 같은 불을 밝히고 운영되는 편의점과 주유소들이 있습니다. 빛은 사람의 삶을 지배합니다. 우지양초처럼 작고 보잘것없는 빛이라도 그것은 인류의 삶의 양식을 지배했었습니다. 또한 빛에 의해서 세상은 변화됩니다. 빛이 있으면(해가 뜨면) 세상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빛이 사라지면 세상의 움직임은 느려지면서 사람들은 쉼을 찾아 보금자리로 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가리켜 어두움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류가 발견해 온 빛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면, “세상의 빛”의 이미지는 어두움을 밝히는 것뿐만 아니라,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임을 말씀하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각자가 속해 있는 세상의 한 모퉁이를 밝히는 불씨 하나쯤은 간직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로교회 담임

신자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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