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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감자

(06/11/2014)


1. 원고 청탁을 받고는 삶을 뒤적거리다가 주일 점심 때 먹은 카레 라이스에서 빠졌던 감자가 생각이 났습니다. 의식의 연상은 연기처럼 꼬리를 물고 피어오르더니, 어린 시절 먹던 감자요리들을 거쳐 씨감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교회에서 주일 점심 식탁에 카레 라이스가 올라왔었습니다. 향긋한 카레 향을 맡는 순간, 본능적으로 입속을 도는 군침과 반대로 ‘먹으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날을 세우며 갈등을 일으켰습니다. 2년 전, ‘당뇨 전 단계’(pre-diabetes) 판정을 받은 후, 가장 즐겨 먹던 음식이 밥상 위의 적(敵)이 되어버린 탓이었습니다. 그런데, 저의 건강을 아시는 집사님들이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이거 고구마 카레 라이스에요. 그러니 안심하고 드셔도 돼요.” 이렇게 감사할 때가 있을까요. 그러나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감자는 밥상에 오르는 반찬들 중에서 제가 가장 반기는 친구였습니다. 노릇노릇해질 정도로 볶아서 소금을 약간 곁들인 감자만 있으면 밥 한그릇은 게눈 감추듯 해치우곤 했습니다. 명주 헝겊으로 감싼 소쿠리에 담긴 찐감자는 또 얼마나 많은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지요. ‘씨감자’라는 것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감자는 다른 작물과는 달리 씨앗을 심지 않고 싹이 난 감자 자체를 심습니다. 씨감자는 씨눈이 있는 부분으로 감자 한 개를 1/4쯤 잘라 심는 소위 씨앗의 역할을 한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죠. 그래서 수확한 감자 중에서 종자로 쓰려고 따로 구별해 두기만 하면 그것이 씨감자가 되는 것입니다. 씨감자는 잘 생길 필요도, 클 필요도 없습니다. 상품의 가치가 없을 정도로 못 생겨도 씨감자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다만, 필요한 것은 자기 몸의 한 부분을 도려내어 땅에 묻을 수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제 몸의 한 부분을 도려내는 것.’ 그것이 핵심입니다. 베어낸 이 작은 조각들이 없이는 굵직굵직한 가을의 감자를 만들어 낼 수없는 것입니다. 2. 씨감자 생각을 하며 글을 구상하고 있는데, 아내가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은 며칠 전이 칠순 생신이셨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변변히 못 챙겨드린 마음이 무겁게 눌러왔습니다.  ‘사람은 게을러지면 못쓴다’는 일념으로 일흔이 넘으신 나이에도 일을 하고 계시지만, 사실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그러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엄마, 죄송해요. 칠순 잔치 때 곁에 없어서요. 생일밥은 잘 드셨어요?” “애들이 와서 번쩍번쩍, 시끌시끌한 데로 델꼬 가더니 삼만원짜리 밥 사주드라.” “와, 우리 엄마 좋으셨겠네요!” “근데, 나는 노래가 하도 시끄러워서 밥이 안 넘어가드라.” “왜요?” “자겸아, 나는, 참말로, 그런 비싼 밥 같은 거 필요없었데이. 내가 바란 건 그냥 식구들끼리 조용히, 오손도손 앉아서 ‘엄마, 그 때 이래서, 저래서 힘들었제? 우리 키우느라 힘들었제? 나는 우리 엄마 이런 게 제일 기억에 남는데이…’ 이런 얘기하면서 보내는 거였지, 비싼 밥 먹는 게 아니었데이.” 순간, 뜨거운 꿈틀거림이 가슴 저 밑바닥을 훑고 흐르는 것 같았습니다.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며 일렁거렸습니다. 남편의 부족한 자리를 채우기 위해 매일 새끼 네마리의 도시락을 여덟 개씩 싸면서 일하셔야 했던 어머니셨습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가족들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일하기 시작하시면서 평생을 단 일년도 쉬어 보신 적이 없으신 어머니셨습니다. “자겸아, 칠십 년을 산다고 살았는데 와 이렇게 살 게 없노? 세월이 총알같데이.” 뿌옇게 맺혔던 것이 후두둑 떨어집니다. “니들 키우면서 마이 생각했데이. ‘나는 나이 칠십이 되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꼬?’ 하고… 그런데 ...이런 모습이네.” 저는 나즈막한 목소리로 불렀습니다. “그래요..., 울 엄마 고생한 거 하나님이 다 아시잖아요! 엄마가 고생해서 우리가 이렇게 잘 자랐잖아요. 엄마, 고마워요.” 변변찮은 자식으로서 해드릴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실은 어머니께서 듣고 싶으셨던 말의 전부이기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얼룩진 눈을 아내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세면대로 갔습니다. 그리고 책상으로 돌아와 앉는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머니의 삶이 바로 씨감자였다고. 자신의 몸을 떼어 내어 땅 속에서 썩어 주신 씨감자였다고. 3. 책상 앞에 앉은 저의 다리 밑을 이제 9개월 된 막내녀석이 기어다니고 있습니다. 중얼중얼 옹알이를 하며 아빠 다리를 잡아당기는 게 안아달라는 뜻 같습니다. 큰 아들과 둘째 딸은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자기들 방에서 한참을 깔깔거리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합니다. 불과 구년 전까지만 해도 아내는 미지의 사람이었고, 세 명의 아이들은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는데, 이제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볼을 비비며, 숨소리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그토록 오랫동안 마주했던 사람들은 지구 반대편에서 이따금씩 교류할 수 밖에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그러셨듯이 저 역시 그 씨감자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삶의 부분들을 베어 내주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 담임 972-488-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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