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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왕, 프레데릭 튜더

(03.11.2016)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에겐 아무리 좋은 물건도 소용없다’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 한 구절입니다 (마태복음 7장6절).

오늘은 이 성경구절과 관련해서 ‘얼음’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834년 어느 이른 여름 날, 화물선, ‘마다가스카(Madagascar)호’는 뉴잉글랜드주 호수의 얼음을 가득 싣고, 보스톤 항구를 떠나 열대의 나라 브라질의 ‘리오 데 자네이루’ 항으로 출발했습니다. 당시는 오늘날과 같은 냉장고가 없던 시절이었음을 생각한다면 이 화물은 의아하기 짝이 없습니다 (참고로, 최초의 냉장고는 1862년 스코트랜드인, ‘제임스 해리스’가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이상한 화물의 주인은, 지금은 ‘얼음 왕’으로 잘 알려진 ‘프레데릭 튜더(Frederic Tudor)’였습니다.


당시 미국 동북부의 부유층의 가정들처럼 프레데릭의 집도 겨울이면 사유지(私有地)인 ‘락우드(Rockwood)’의 호수에서 거대한 얼음 덩어리를 가져와 창고에 넣어놓고 다용도도 활용했습니다. 잘라 놓은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햇볕만 직접 닿지 않는다면, 얼음은 상당히 오래동안 녹지 않고 보존되었습니다. 그래서 늦은 봄에서 심지어 초여름까지 얼음 덩어리를 이용해 시원한 냉음료나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프레데릭이 17살이 되던 해, 그의 아버지는 프레데릭의 병약한 형, 존을 따뜻한 지역에서 요양하도록 하기 위해 프레데릭과 함께 남미 캐리비안 지역으로 여행 보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고온 다습한 기후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와 형은 여행 끝에 죽고 말았습니다. 형을 잃은 이 슬픈 여행은 오히려 프레데릭에게는 엄청난 꿈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후덥지근한 남미의 날씨 속에서 프레데릭은 끊임없이 고국에 두고 온 얼음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쿠바에서 얼음은 상상을 초월하는 가치가 있을 것이다!’ 5월까지도 쉽게 구경할 수 있는 얼음이 남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물건이 될 것임에 분명했습니다.


그 후 2년 동안 프레데릭은 그의 또다른 형 윌리엄과 사촌 로버트를 설득 끝에 투자를 받아서 항해팀을 꾸리고는, 드디어 1805년 2월, 80톤의 얼음을 싣고 카리브해를 향해 돛을 올렸습니다. 이 젊은 야심가의 화물선, ‘페이버릿(the Favorite)호’는 세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가제트지(the Gazette’s)’를 비롯한 언론들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청년의 도전을 비웃었습니다.


당시 원양 항해에서 흔히들 있었던 일처럼, 악천후와의 사투 끝에 ‘페이버릿호’는 마침내 카리브해의 프랑스 식민지인 ‘마티닉(Martinique)’이라는 섬에 도착했습니다. 그동안 80톤의 얼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놀랍게도, 거대한 얼음 덩어이리들은 믿기지 않을만큼 훌륭한 상태로 녹지 않고 보존되어 있었습니다!

아뿔싸! 그러나, 더 놀라운 일은, 섬사람들은 태어나서 단 한번도 이 이상한 물건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냉장시설이 없던 19세기 초까지, 연 평균 화씨 80도가 넘는 적도 지역에서 물이 어는 것을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본 적이 없으니 그 가치를 알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들은 이 ‘얼음’이라는 물건으로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랐던 것입니다. 남미에는 얼음을 구할 수가 없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던 프레데릭이 결코 생각하지 못했던 점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현지에서 마땅한 얼음 보관 창고를 지을 겨를도 없었던 탓에, 80톤의 거대한 얼음 덩어리들이 물로 변하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프레데릭에게는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줄 희망이었고, 미국의 대 문호, 소로우(Henry D. Thoreau)에게는 너무나 기묘한 나머지 깊은 명상의 대상이었으며(소로우는 그의 저서, Walden에서 깊고 푸른 매사추세츠주의 연못을 바라보며 ‘참 흥미로운 대상’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타들어가는 혀 끝에 달콤한 황홀감을 선사하는 너무나 매력적인 먹거리(아이스크림)일지 몰라도, 19세기 초, 남미의 섬주민들에게 얼음은, 녹을 때까지 그저 멍하게 쳐다보기만 해야 하는 대상 외엔 아무런 가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들을 가치롭게 여기며 살고 있을까요? 혹시나, 경험해 본 적이 없다고 그냥 지나쳐 버리거나 등한히 여기는 것들은 없을까요? 설령, 물건들은 그렇게 지나쳐도 사람은 그렇게 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뒷 이야기. 그렇게 인류 최초의 얼음 수출은 웃지 못할 해프닝처럼 끝이 나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재정 파탄과 감옥에 투옥되는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프레데릭은 보다 효과적인 절연방법을 고안해 내어서 수출 지역 현지에 얼음 보관 창고를 지었고, 지속적으로 얼음 수출선을 보냈습니다. 마침내, 그가 죽던 해인 1864년까지 프레데릭은 200만 불 이상을 벌어들이는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주. 프레데릭 튜더의 얼음 수출 이야기는 Steven Johnson의 저서, How We Got to Now: Six Innovations That Made the Modern World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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