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9.2018
야곱의 떠남
떠남으로 점철된 인생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입니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창 47:9) 이 말은 인생의 말년에 고향 땅에 흉년이 들자 양식을 찾아 이집트로 내려간 야곱이 자신의 아들,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 채,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한 말입니다. 이 짧은 한 마디에 자신의 인생에 대한 회한이 엿보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삶이 떠남으로 점철된 나그네 길이었음을 깨닫고 있었습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그 어떤 족장보다 야곱의 삶은 떠남으로 점철된 인생이었습니다. 장남의 축복을 빼앗긴 후, 복수심에 불타는 형 에서를 피해서 삼촌의 집으로 떠나야만 했습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는 소와 양을 가로채다시피 해서 떠나왔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형 에서와 해후를 한 후, 야곱은 다시 벧엘로 떠납니다. 그의 도피 시절 만났던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인생 말년에는 가나안 땅에 든 흉년 때문에 고향을 버리고,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던 이집트로 떠나서 그곳에서 향년을 마감했습니다.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성격 그러면, 왜 야곱은 이토록 도망치고, 떠나야 하는 험악한 삶을 살아야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의 성격 때문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야곱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끊임없이 뭔가를 성취하고 가지려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야망을 추구할 때 속임수를 즐겨 사용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히브리어로 ‘야켑’은 발뒷꿈치를 뜻합니다. 비유적인 뜻으로 ‘족적’이라는 뜻도 있고, ‘야비하게 뒤에서 공격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입니다. 우리말로는 ‘발목 잡는다’ 혹은 ‘뒤통수친다’라고 하지요. 비유적으로 쓰일 때는 그리 좋은 뜻으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이것이 야곱의 이름의 뜻입니다. 그의 이름에서 그의 성품이 보입니다. 한번 갖기로 마음먹은 것을 갖기 위해 곧잘 모략을 꾸미는 꾀돌이였습니다. 형의 시장기를 이용해서 팥죽 한 그릇과 장자 상속권을 맞바꿀 때도 그러했고, 삼촌 라반에게 받지 못한 밀린 품삯을 대신해서 삼촌의 재산을 한몫 챙기는 모습에서도 여지없이 속임수의 달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즉, 야곱은 자신의 성품 때문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떠난 길에서 만난 하나님 창세기의 야곱의 이야기에서 야곱은 두번 하나님을 만납니다. 두번 모두 그가 길을 떠났을 때였습니다. 첫 번째 만남은 야곱이 에서의 추격을 피해서 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갈 때였습니다. 날이 어두워 노숙을 하던 야곱의 꿈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것입니다. 자신의 머리맡에서부터 하늘까지 닿은 사다리와 거기를 오르락내리락하는 천사들의 모습을 통해서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기와 늘 함께 하심을 깨닫습니다. 익숙하고 보호받아 왔던 어머니 리브가의 품을 떠났을 때 야곱은 철저히 혼자임을 느꼈을 것입니다. 이제 자신의 삶이 어떻게 흘러갈지 무슨 일이 닥칠지 어느것 하나 안전한 것이 없는 위기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야말로 가장 절실하게 자신과 ‘함께 하는 존재’를 깨달았던 순간이었습니다. 떠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깨달은 것입니다. 두번째 만남은 그가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이루어집니다. 삼촌 라반의 집에서 몰래 빼돌린 재산과 두 아내를 데리고 야반도주하듯 떠나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상당한 규모의 가축들과 노비들, 그리고 두 아내, 야곱의 모습은 누가 봐도 객지에서 성공을 거둔 모습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고향을 향해 떠난 야곱의 길은 여전히 불안하기만 합니다. 형 에서를 만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과거와 대면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야곱은 야망과 권모술수로 이룬 모든 것들을 내려놓았습니다. 야곱으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게 했던 성품, 욕심 많고 꾀 많았던 그 성품이 무너졌습니다. 물질의 복을 충분히 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야곱은 오히려 천사에게 자신을 축복해 줄 것을 끈질기게 요구합니다. 얍복강에서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하는 야곱의 모습은 인생의 참된 복은 하나님께만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두번째 떠남의 길에서 야곱은 참된 복의 근원에 대해서 깨달은 것입니다. 이처럼, 야곱의 떠남은 연약한 인간의 모습과 그 연약한 모습이 다듬어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 떠남에서 항상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노년의 야곱의 고백에서처럼 그의 인생은 고난이 끊이지 않는 파란만장한 여정이었지만, 그 길엔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로교회
신자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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