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29.19
10개의 손가락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두뇌 다음으로, 큰 선물입니다. 다른 피조물들과는 달리, 정교한 동작이 가능한 이 손으로 인간은 유구한 문명을 발전시켜 왔습니다. 손으로 못할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술적인 도구를 만들어내는가 하면, 의사소통의 도구로도 훌륭한 기능을 가졌습니다. 한편, 인간의 모든 활동에 연관되어 있는 도구이니만큼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1847년 헝가리에서 이그나즈 스멜바이즈 (Ignaz Semmelweis)라는 의사는 병원들에게 다음과 같은 제안을 했습니다. 의사들과 수술 집도의들은 환자에게 환자들을 회진하기 전에 반드시 손을 씻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제안을 들은 의료 기관들은 집단적으로 그를 비웃고, 의사직을 박탈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를 정신병원에 감금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에는 기본적인 위생 상식인 ‘손씻기’에 대한 의식이 없던 시대에 의식이 깨어있었다는 이유로 결국, 그는 외롭게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제안을 하기 전까지 스멜바이즈는 역학 조사를 했습니다. 병원에서 아기를 출산하는 경우와 집에서 산파의 도움으로 출산하는 경우에 산모가 ‘산욕열(puerperal fever, 출산 후 여성의 생식기관 감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열)’을 겪을 확률에 대해서 조사한 것입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 산욕열은 산모에게 치명적인 질병이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목숨을 잃었습니다. 놀랍게도, 그 결과는 집에서 출산하는 경우보다 병원에서 출산하는 산모의 사망률이 현저하게 높았습니다. 그리고 산모의 시신 부검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는 영안실에 안치된 시신에서 나온 박테리아와 일치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환자와 영안실, 조산실, 등을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의사들의 손에 의해 균이 감염된 것입니다.
손뿐만이 아닙니다. 아마 우리 중 많은 분들은 옛날 사람들이 잘 씻지 않았던 이유는 상수도 시설이 없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마는 않았습니다. 저 먼 중세 시대에서부터 근대(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의 위생 개념 속에는, ‘몸을 물속에 담그는 행위는 명백히 비위생적이며 위험할 수도 있는 행위이며, 몸을 물속에 잠그면서 (반신욕과 같이) 앉아있는 행위는 야만족의 풍습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것이라고 당시 유럽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프랑스의 한 의사는 ‘물이 피부 속으로 침투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오일이나 가는 진흙 등으로 땀구멍을 막아주는 것이 좋다.’ 말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언제든지 샤워를 할 수 있었던 왕실에서조차도,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은 한 달에 한 번 목욕을 해주는 정도였고, 프랑스의 루이 8세는 태어나서 7살이 될 때까지 목욕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외부로부터 몸속으로 균이 침투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지만, 신체 자체에 묻어있는 균을 떼어내야 한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못 미쳤던 것 같습니다. 이미 내 손과 몸에 붙어 있는 균을 생각하지 못한 채, 그것을 오일과 진흙으로 마사지해서 덮어버린다면 더 감염을 촉진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우리는 손의 중요함을 의식하지 못한 채 생활합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도 손을 도구로 해서 타이핑을 하고 있습니다. 부지불식 간에 손은 유용한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병을 옮기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의 삶의 도구를 깨끗이 씻어야 유용한 도구가 됩니다. 손을 포함해서 우리 몸을 씻는 행위는 성경에서 정결하게 하는 행위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최후의 만찬 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3장 8-9절). 신약성경 시대 당시까지 유대인에게는 ‘정결례’라는 법이 있어서 식사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어야 했습니다 (마가복음 7장 3절).
하루에도 몇 번씩 손을 씻는 이 간단한 행위를 하면서도 나의 삶의 자세를 돌이켜 볼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보다 건강하게 되어 타인을 유익하게 하는 도구로서의 기능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로교회
신자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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