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15/2015)
여러분은 ‘무엇을 기록한다’ 라고 하면 가장 먼저 글을 쓰는 행위를 연상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록의 도구는 비단 문자만이 아닙니다. 그림도 하나의 기록 도구가 될 수 있고, 녹음도 기록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녹음이라고 하는 것이 발명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녹음(錄音)이란 말 그대로 소리(音)를 기록하는(錄) 것입니다. 기원 후1500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막연하게 ‘소리는 공기를 타고 전파될 것이다’ 라는 정도의 추측 외에는 소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 후 계몽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서 과학과 의학의 괄목상대할만한 발전에 힘입어 해부학에 관한 도감들이 출판되게 되었고 여기에는 사람의 귀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1850년경 이 해부학 책들을 인쇄하는 프랑의 어느 인쇄소에서 ‘에두아르 레옹 스캇 드 마틴빌’(Édouard-Léon Scott de Martinville)이라는 인쇄공이 귀의 해부도를 우연히 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의 녹음기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었습니다.
당시, 스캇은 속기술(速記術)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속기는 그 때까지만 해도 소리를 기록하는 유일하고도 가장 빠른 기술이었습니다. 그러나, 귀 해부도를 본 스캇의 마음에는 ‘어쩌면 인간의 소리를 기록하는 자동 장치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1857년, 에디슨이 축음기를 만들기 무려 200년 전, 프랑스 정부는 스캇이 만든 소리의 파장을 기록하는 기계에 대해 특허권을 부여해 줍니다. 스캇은 이것을 ‘폰오토그래프(phonautograph)’ 라고 불렀습니다.
스캇의 이 우스꽝스런 녹음기는 둥그런 술통 모양의 원통과 카본지 같은 그으름 종이가 말린 두루마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원통 앞에서 말을 하면, 목소리의 진동이 떨림판을 진동시키게 되고, 이 떨림은 돼지 털로 만든 첨필 같은 바늘에 전달되어, 바늘이 진동하면서 카본지에 파장을 그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말을 단어(word)로 기록하는 대신, 소리의 파장(sound waveform)으로 기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에디슨의 축음기보다 200년이나 앞선 이 위대한 발명품을 만든 스캇이 엄청난 실수를 범했으니, 바로 녹음한 소리를 재생(palyback)하는 장치는 만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소리를 재생할 수 없으니 무슨 내용이 녹음되었는지, 제대로 녹음되었는지 알 길이 없었던 것이죠. 이 기록을 최근에야 재생하게 된 것입니다 (2008년).
카본지에 기록된 소리의 파장을 컴퓨터에서 입력해서 재생해 본 결과, 그 소리는 ‘Au Clair de la Lune’ 라는 프랑스 민요 한 곡과 스캇의 육성(肉聲)이었습니다.
기록과 재생의 중요성에 대해서 말하고자 이 장황한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저장 도구와 그 방법은 다양화되고 발달해 갑니다. 소형 녹음기를 스마트폰이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필름 카메라와는 비교할 수 없는 기록 양과 화질을 디지털 카메라가 구현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하드 디스크의 저장 용량과 속도의 개념을 뛰어넘어 ‘클라우드(cloud)’라는 신개념의 저장 방법이 등장했습니다.
사람들은 엄청난 양의 정보들을 기록하고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장의 효율성을 위해서는 보다 나은 기술이 필요할지 몰라도 그것을 재생에는 천하 없어도 시간이 필요합니다.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단 한 번의 손가락질(클릭)로 몇 메가 바이트로 압축한 파일로 만들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것을 펼쳐서 읽고 습득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컴퓨터에 쌓여가는 수많은 사진들만 보아도 이 점에 공감이 갈 것입니다.
수도 없이 풍경이며, 아이들 사진이며 찍어서 저장하지만, 그 파일들을 열어서 보려면 여유가 필요합니다. 기록도 중요하지만, 기록한 내용을 얼마나 재생하며 사느냐도 중요합니다.
스캇의 녹음기에 ‘어떤’ 소리가 기록되었을까? 하는 호기심도 중요하지만, ‘왜’ 스캇은 ‘Au Clair de la Lune’ 라는 프랑스 민요를 그 역사적인 기계에 가장 먼저 기록했을까? 하는 질문은 그 노래에 잠겨 듣고 가사를 생각하며 감상할 때만 얻을 수 있는 생각일 것입니다. 이 민요 1절의 가사내용은 이렇습니다. ‘내 친구 삐에로야, 달빛 비치는 밤이 되면, 글을 쓸 수 있도록 나에게 깃털 펜 (quill)을 좀 빌려주렴. 촛불이 꺼져 빛이 없으니 하나님의 사랑으로 네 집 문을 열어주렴.’ 계속해서 4절까지 이어지는 이 노래의 주인공 아이는 펜을 찾아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닙니다. 이것은 당시 소리의 기록에 지대한 관심이 있었던 스캇의 마음을 반영한 노래가 아닐까요?
오늘 저녁에는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아이들의 어릴 적 사진들을 열어보거나, 오래된 일기장이나 메모장을 한번쯤 들추어 보는 여유를 가져 보시지 않겠습니까?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담임
972-488-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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