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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사진dallashanaro123

우리의 삶은 나아질까요?

FEB 23, 2017


“멍크 토론회” (Munk Debate)를 아시나요? 2008년 캐나다의 한 금광 소유주인 재벌 피터 멍크(Peter Munk)는 자신의 사재(私財)를 털어 ‘오리아’라는 지식 재단을 설립합니다. 그리고는 1년에 두 차례 전세계에서 내노라 하는 석학들을 초청해서 토론을 벌입니다.


양편이 정해진 주제에 대해서 2시간 여의 열띤 토론 후, 방청객들의 투표를 통해서 승패를 가리는 일종의 지식 경연인데, 그 주제가 방대하고 심오하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2015년 11월에 열린 멍크 토론회의 주제는 ‘인류는 과연 진보(進步)하는가?’였습니다.


이 질문에 찬성하는 쪽(예. 스티븐 핑커)은, 인간 삶의 진보를 낙관하는 증거로서, 평균수명의 연장, 보건 상태 호전, 절대빈곤 감소, 사회의 안전 장치, 개인의 자유 보장, 지식의 습득과 보급, 인권 및 성평등 등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주장하길, “인류의 진보는 분명히 있었으며, 특히 최빈곤층의 삶은 눈에 띄게 개선되었다.”고 말합니다. 이런 물질적 삶의 개선으로 인해 인류는 더 행복한 삶을 이루어가고 있다고 봅니다.


한편, 반대하는 사상가들(예. 알랭 드 보통)은, 인간의 근본적인 불완전성을 강조하면서, 과학 기술 맹신(盲信)과 통계 만능주의에 경종을 울립니다. 계량적인 지표로는 쉽게 잡아낼 수 없는 비물질적인 영역을 이들은 지적합니다. 상대적 박탈감, 실존적 불행, 정신적 질환 같은 것들은 인간의 본성에 내재된 결함에 기인하는 것이며, 이러한 정신적 차원에서의 복지는 물질적 풍요의 통계적 증가와 비례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에서도 찬성하는 진영은 과학기술에 대해서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그 연구 결과들은 누적되어 인류의 삶의 진보에 발판 역할을 한다고 보는 반면, 반대쪽은 기술 이면의 파괴적인 위험성에 더 주목합니다. 기술 성과의 누적은 지금껏 쌓아온 성과마저도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이 함께 커지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토론 주제가 좀 거창하게 느껴진다면 이렇게 질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의 삶은 작년에, 혹은 과거에 비해서 나아졌는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작년보다 수입이 늘어난 걸 보면 나아졌지.” 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수입은 늘었는데, 씀씀이가 감당이 안 되네.”라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요즘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애서 걱정이야.”라는 분들이 있는 반면, “새로운 시술(施術) 덕분에 생각보다 암을 빨리 잡아서 얼마나 감사한지!”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혹은, “이제 좀 살만하니 자식 녀석이 어찌나 속을 썩이는지…!” “딱히 부족한 것도 없는데, 왜이리 마음이 헛헛할까?”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불혹(不惑)의 나이대를 지나고 있는 저로서도 이제 슬슬 뒤를 돌아보는 시간이 사유(思惟)의 깊은 곳까지 차지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금 나의 삶, 물질적, 정신적, 영적 측면에서 얼마나 나아졌는가?’ ‘육체의 쇠락을 지불한 댓가로 나의 정신은 얼마나 성장했는가?’ ‘내가 고민하는 문제들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넓어지고 깊어졌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면 하던 일을 잠시 손에서 떨어뜨리게 됩니다.


2015년 당시 토론에서 양측은 결론없는 팽팽한 팽행선을 그리는 것 같으면서도, 결국 교차하는 지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가 미래를 쉽게 “포기하지 않고” 관심을 갖되, 결코 스스로를 “과신하거나 오만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미래를 주목하지 않고 관심갖지 않는 사람은 오늘의 삶을 허비할 수 있습니다. 반면, 미래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사람은 오늘을 근심할 수 있습니다.


목사인 저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이 토론의 결과를 적용해 보고 싶습니다. 기독에서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천국에 대한 소망과 ‘현재’라고 할 수 있는 일상생활에서의 영성이 조화될 때, 우리는 염세주의 (혹은, 현실도피적)와 세속주의의 양극단을 피하면서도 균형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앞을 내다보는 매의 눈과 현실에 충실한 개미의 부지런함을 겸비한다면 우리도 멍크 토론회의 패널로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지 않을까요?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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