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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중심성 (2)

APR 26, 2018


지난 번 칼럼에 이어서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질문은 ‘왜 기독교는 자신을 상징하는 물건으로서 혐오스럽고, 저주스러운 형틀인 십자가를 택했는가?’였습니다.


오늘 생각해 볼 두번째 이유는, 이 십자가의 죽음이 애시당초부터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대인들의 전통(구약 성경)이 추구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속죄에 대한 유대인들의 전통(구약 성경의 가르침)은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그 성품에 있어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완전하셔야만 하나님이시겠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만 베푸는 하나님이라면 어떤 죄 앞에서도 용서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공의’의 성품에 부합하도록 죄를 다루셔야만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타락 이후, 죄 문제에 있어서 공식들을 세우셨습니다. 그것은, 다음의 네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죄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 (2)그 댓가는 ‘사망’이다 (롬6:23). (사실, 인간의 물리적 죽음은 생물학적 결과가 아니라 형벌의 결과라고 말합니다). (3)생명은 그 피에 있다 (레17:11). 피 채 먹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레19:26). (4)그러므로,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도 없다 (히9:22). 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들은 그 전통을 온전히 완성하기 위해서 오신 분(예수)을 외면하고 죽였던 것이죠. 왜냐하면, 유대인들, 특히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은 이 위험천만한 인물을 제거하는 것이 백번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유대인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처럼 보이는 내용을 곧잘 설파하고 다녔습니다. 더군다나 그를 따르는 군중은 여기저기서 삽시간에 불어났습니다. 어쩌면 유대인들을 지탱해 오고 있었던 민족적, 신앙적 근간을 송두리째 무너뜨릴 수도 있는 위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내부자(가룟 유다)와 접촉을 시도해서 예수를 잡아들인 것이죠.

그러나 놀랍게도, 이것이 정확하게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이었습니다. 달라스 윌라드의 표현을 빌자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모략(divine conspiracy)입니다. 하나님의 모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를 죽인 범인들을 추적해 가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 공모자들이 있습니다.

먼저, 실제로 예수의 죽음에 가담한 이들입니다. 누가 예수를 죽였습니까? 복음서 저자들(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초기 교회의 역사 속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를 죽인 범인들을 1차적으로는 빌라도와 가야바, 가룟 유다를 중심으로 한 제사장들, 군중들, 그리고 군병들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군병들의 창과 망치가 휘둘러지기 이전에 이 십자가형에 가담한 일단의 무리들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유다가 제사장들에게 팔았습니다. 넘겨 받은 제사장 및 종교지도자들은 ‘불법 야간 비상 법정’을 열어서 ‘신성모독죄’로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비상 법정을 연 까닭은 하루 앞으로 다가온 유대인의 대명절인 유월절 이전에 모든 것을 신속하게 종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결 심판 후, 그들은 예수를 집정관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당시 법적으로 유대인들에게는 형을 집행할 권한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간단한 심문을 마친 빌라도는 예수께로부터 사형에 해당하는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아 사형을 집행하라고 외치던 군중들의 강력한 항의의 고함소리에 빌라도는 위축되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유월절에 이스라엘의 독립을 외치며 소요(騷擾)를 일으킨 사건이 악몽처럼 떠올랐기 때문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 보아야 할 흥미로운 점은 그들에게 사용된 동사들은 ‘paradidomi(파라디도미)’ 로서 ‘넘겨주다, 팔다’ 라는 동사입니다. 즉, 그들은 상위 권력자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는 책임전가의 역할을 담당하였을 뿐입니다. 공범이었을 뿐, 진범은 따로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도둑질하는데 망보는 역할을 한 것이지 실제로 집에 들어가서 물건을 훔쳐나온 범인은 따로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그 군병들의 용서를 비는 기도 속에서도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 역시 행4장에서 “너희가 알지 못하여 그리 하였으며…” 라고 했습니다.


  - 다음편에 계속 -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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