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3, 2017
“시몽,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보셨을 레미 구르몽(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1836-1915)의 이 싯구는 이번 주 달라스의 날씨에 꼭 맞는 글인 것 같습니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가 쉽지 않은 달라스에 살고 있는 요즈음, 낙엽 흐드러진 길이 그리워집니다. 오늘은 낙엽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생물학에서 ‘아폽토시스’(Apoptosis)라고 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것은 세포가 예정된 프로그램에 의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한 생명체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온전하게 기능하는 기관들이 생겨나거나 존속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일종의 “세포들의 자살”입니다.
가을의 대명사, 낙엽이 바로 아폽토시스의 좋은 예입니다. 활엽수는 매년 새롭게 재생할 수 있도록 가을이 되면 기온이 떨어지고 공기가 건조해지면, 뿌리를 통해 많은 양의 물을 빨아올릴 수 없게 되어, 나뭇잎은 수분 부족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나무는 광합성 작용을 할 때 엄청난 많은 양의 물을 대기 속으로 뿜어내야 합니다. 실험에 따르면, 옥수수는 낱알 1kg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잎에서 600kg의 물을 증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렇게 수분이 부족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는 수 없이 광합성 활동을 멈추거나 줄여야 하기에 자신의 잎을 떨어뜨리는 것이 바로 낙엽입니다. 즉, 뿌리와 줄기가 겨우내 살아남기 위해 나뭇잎 세포들이 죽어주는 셈이죠. 인간에게도 아폽토시스 현상이 일어납니다. 예를 들어, 인간의 태아 시기에 달려있던 조그만 꼬리(?)는 스스로를 파괴하여 꼬리가 없는 인간의 척추를 형성하도록 하는 것이죠.
한편, 아폽토시스에 저항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뇌는 인체의 모든 세포에게 끊임없이 지시를 내립니다. 자신의 임무가 무엇이며, 자신의 존재가 아직도 유용한지를 알려줍니다. 각 세포들에게 어떻게 성장하고 유지할 것인지를 알려주는 반면, 어떤 세포들에게는 죽을 것을 지시합니다. 이렇게 필요하지 않은 세포들은 죽어야 하는데, 뇌가 보내는 아폽토시스의 신호를 따르지 않고 버티면서 악성으로 바뀌는 세포가 바로 ‘암’이 되는 것입니다. 일종의 ‘이종(異種) 단백질’이라고 할 수 있는 암세포들은 자살을 거부하고 이기적으로 불멸성을 추구하다가 결국, 몸 전체를 죽게 한다는 것이 일부 의학자들의 의견입니다.
이렇듯, 아폽토시스는 보다 건강하게 성장하거나 생존하기 위해서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해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는 과정입니다. 우리 삶에서도 아폽토시스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한 해의 끝을 달 포 가량 앞두고 있는 이 시간, 올 한 해 나도 모르게 덕지덕지 달고 지내왔던 것들, 나쁜 기억들, 상한 마음들이 있습니까? 혹은 내가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방해가 되는 오래된 나쁜 습관들은 없습니까?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가을의 낭만을 즐기는 여유와 아울러, 내 생활의 아폽토시스도 생각해 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주말 되길 바랍니다.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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