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6, 2018
기록에 대한 인간의 욕구는 문자가 발명되기 훨씬 이전 시대부터 있어 왔습니다.
1991년 9월, 프랑스의 버건디(Burgundy) 지방에 있는 ‘아흐시 수 큐흐(Arcy-sur-Cure)’ 동굴에서는 많은 벽화들이 발견되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것으로 판명된 벽화들이 이 동굴에서 발견된 몇 년 후, 파리 대학의 이고르 레즈니코프 (Iegor Reznikoff) 교수는 이보다 더 흥미로운 점을 알아내었는데요, 그것은 바로 이 벽화들이 위치한 곳에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벽화들은 그 거대한 동굴 내에서 가장 소리가 풍부하게 울리는 지점들에 그려진 것이었습니다. 만약, 물소들이 그려져 있는 한 벽화 앞에서 그림을 보며 ‘음메~’ 하고 소 울음소리를 낸다면, 여러분은 7군데에서 동시에 소 울음소리가 입체적으로 울렸다가 5초 간격으로 하나씩 사라지는 환상적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소리를 기록으로는 남길 수 없었던 구석기시대 사람들은 좀 더 소리를 오래 붙잡아 두고자 이런 방법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말’(음성학에서는 ‘발화’ ?話/utterance 라고도 합니다)이라고 하는 현상은 휘발성이 매우 강해서 공기 중에 나오는 즉시 사라져 버립니다. 혹자가 이르길, ‘미술은 공간의 예술이고,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라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소리 즉, 음악에서는 한 박자, 두 박자 등 “시간의 길이”로 측정되는 음표가 기본 기록 수단인 셈이죠. 시간이 지남과 함께 소리는 사라집니다. 고흐의 그림들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감상할 수 있지만, 토스카니니가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은, 녹음을 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한 번의 연주로 끝나는 것입니다.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 입에서 나온 소리(말)도 두번 다시 들을 수 없습니다. 사라집니다. 아흐시 수 큐흐 동굴에서 소 울음소리가 7번을 메아리친다고 해도 영원히 소리가 남아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로서의 말은 한순간에 증발하지만, ‘의미’로서의 말은 오래오래 듣는 사람들의 마음에 메아리로 남습니다. 좋건 싫건 일단 귓전을 뚫고 고막을 통과해 들어온 그 소리는 뇌에 의미로 새겨집니다. 나의 의견에 찬성하는 말, 나를 비방하는 말, 사랑을 속삭이는 말, 등… 그래서 이 발화의 행위를 예부터 ‘엎질러진 물’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좋은 말이든 싫은 말이든 한번 성대를 통해 입을 떠난 말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영화, ‘다우트’에서 본 내용입니다. 영화의 주인공인 플린 신부는 어느 주일에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한 여인이 자기도 잘 모르는 남자에 대해서 친구에게 험담을 했습니다. 그날 밤, 그녀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에서 큰 손가락 하나가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있었습니다. 양심에 큰 죄책감을 느낀 그녀는 다음 날 고해성사를 하기 위해 신부를 찾아갔습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말합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한 가지 더 할 일이 있습니다. 지금 집으로 가셔서 베개와 칼을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십시오. 그리고 베개를 칼로 그어 찢으십시오. 그 후에 다시 오십시오.”
그녀는 신부님이 시키는 대로 하고는 다시 고해하러 성당으로 왔습니다
“칼로 베개를 그었습니까?” 신부님이 물었습니다.
“네, 신부님” “ 그녀가 대답했습니다.
“어떻던가요?” 신부님이 되물었습니다.
“깃털이 날렸어요. 온 사방으로…”
“자, 그럼 가셔서 이제 그 깃털을 다시 주워 모아서 베개에 담으세요.”
“신부님, 그건 불가능해요. 깃털들은 죄다 바람에 날려가버렸어요.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모를 거에요.”
그러자, 신부님이 대답했습니다. “남에 대한 험담도 그것과 똑같습니다.”
소리로서의 말의 휘발성에 대해서 아흐시 수 큐흐 동굴의 벽화 이야기를 꺼내봤습니다. 의미로서의 말의 중요성에 대해 영화의 한 장면을 인용해 보았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쉬지 않고 ‘말의 깃털’을 날려보냅니다. 그것은 마치 민들레 홀씨와도 같아서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에게 알러지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어떤 곳에서는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기도 합니다. 부디 독자 여러분들의 입에서 나가는 말들은 귀에서는 금방 사라질지라도 마음에는 오래오래 남아 꽃을 피우는 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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