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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맛, 다른 맛

(02/14/2014)


공항직원들과 입씨름 한 끝에, 25kg을 살짝 넘긴 두 개의 이민가방을 부쳤다. 이제 남은 건 기내용 수화물 케리어 하나와 백팩. 그리고 한 손엔 탑승권, 다른 한 손엔 시장기를 달래기 위한 맥도널드 햄버거가 쥐어져 있었다. “인천-나리타(Narita)-오헤어(O’Hare)” 탑승권에 인쇄된 이름들이었다. 난생 처음 들어본 이름들. ‘나리타’는 무슨 액션 영화에 나오는 동양 여자 이름같고, ‘오헤어’는 아무리 이국적인 분위기를 떠올리려 해도 미용실 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무슨 이름들이 이러냐?” 햄버거를 한 입 베어 물며 중얼거리던 내 시선은 햄버거 봉투로 떨어졌다. 하얀 종이 봉투에 새겨진 빨간 바탕의 노란 알파벳 “M”이 눈에 들어왔다. 동글동글 가운데 배가 불룩하게 나온 그 알파벳이 불현듯 나의 엉뚱한 모험심에 충동질을 걸어왔다. ‘나리타, 오헤어 공항에도 맥도널드가 있겠지?’ 아프리카의 남아공에도 맥도널드가 있다며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 여행기를 읽었던 생각이 난 것이다. 맛의 통일을 이루는 것이 푸드 프랜차이즈 비즈니스의 핵심 요건 중 하나로 알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즉, 한국, 일본, 미국의 맥도널드 햄버거들의 “맛”을 비교해 보자는 생각이 든 것. 두 환승공항에서 주어진 시간은 각각 2시간과 4시간. 맥도널드를 찾아 아무리 공항 안을 헤맨다 해도, 햄버거 하나 사먹기에는 충분한 시간이리라. 이렇게 해서, 2007년 여름, 내 생애 가장 긴 장거리 여행, 유학길에 오르는 여행은 ‘맛 대 맛’ 비교 프로젝트와 함께 시작되었다. 3시간 여 비행 끝에 나리타에 내렸다. 생각보다 작은 환승 게이트를 빠져나온 나는 잰 걸음으로 맥도널드 매장을 찾아나섰다. ‘찾았다~!’ 다행히 맥도널드가 있었다. 생각보다 작은 매장엔 일본의 국화인 벚꽃이 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여긴 뎀뿌라의 본고장 아니던가’ 라는 생각에, “피쉬버거 데스요”라며 피쉬버거를 하나 주문했다. “…데스”, “데스까”는 내가 아는 유일한 일본어였다. 한국의 피쉬버거에 든 생선 튀김 패티보다는 훨씬 때깔이 좋았고, 특히 바삭한 질감은 지금도 입 속에 기억이 난다. 시장기 때문만은 분명히 아니었다. ‘역시 튀김 하나는 끝내주는구나!’하며 흡족해 했다. 처음 태평양을 건너던 반나절이 넘는 여행은 정말 지루했다. 요즘처럼 영화 상영같은 기내 편의시설도 제한적이어서 여행용 쿠션 베개와 씨름하며 잠을 청해야만 했다. 드디어, 그 미용실을 연상케 했던 오헤어 공항에 도착했다. ‘와! 커도 너무 크다!’ 미국에서 나의 첫 마디였다. 공항 내에서 모노레일을 타야만 다음 비행기로 환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이렇게 사람들이 붐비는 곳에 맥도널드가 없을 리가 없었다. 짧은 영어로 더듬더듬 ‘빅 맥’을 주문해서 받아든 나는 또 한번 놀랐다. 음료수 사이즈가 한국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았다. 아무튼 프로젝트의 객관적 실행을 위해서 최대한 진정된 마음으로 빅 맥을 시식했다. 맛은 대체로 비슷했으나 고기맛이 한국의 햄버거보다 더 풍부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맛 대 맛” 비교 프로젝트는 지금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참 엉뚱했던 것 같다. 결론은…, 같은 브랜드지만 조금씩 맛이 차이가 나더라는 것이었다. 빅 맥 햄버거의 가격은 “빅 맥 지표(Big Mac Index)”라고 해서, 각 나라의 구매력을 평가하는 경제지표로 사용될 정도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 맥도널드는 진출하는 나라마다 각 나라의 고유한 분위기로 ‘로컬라이징’(localizing)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차별화 하고 있다. 일부 유럽국가들에서는 와인이나 맥주같은 주류도 팔고, 아시아의 경우에는 수프 종류를 함께 파는 나라도 있다. 종교에 따라 양고기나 닭고기를 패티로 하는 버거를 주로 팔거나 돼지고기나 쇠고기를 일체 제외하기도 한다. 맛에 있어서 ‘통일성’과 ‘다양성’을 ‘같음과 다름’이라는 말로 환언해 보는 건 어떨까? 서구사회는 같음과 다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왔다. 영국의 경우, 감리교나 침례교, 개신교 등과 같은 비국교도들의 신앙의 다름을 인정해 주기 위해 ‘관용법(Toleration Act)’을 제정했었다. 프랑스에서는 ‘똘레랑스(tolerance)’라는 정신이 마치 우리나라의 ‘정’과 비슷하게 국민정서로 자리잡고 있다. 이민자들로 출발한 미국 사회 역시도 다른 문화나 관습을 인정해 주는 것에 비교적 익숙한 것 같다. 나와 같지 않으면 틀린 것으로 간주해 버리거나, 나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식의 생각은 주변을 불편하게 만든다. 같은 브랜드 아래서 운영되는 각 나라의 지점들처럼, 같음 속에서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 속에서 같음을 추구하는 마음이 이민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신자겸 목사 하나로교회 담임 972-488-0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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